2009년 12월 19일
레코드점 망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영악' 아닌 '단순' 때문
이달 초, 오래된 휴대전화가 골골대는 바람에 생산 없는 완전 소비에 주력하는 나는 아버지와 함께 휴대전화 대리점에 가게 됐다. 2년 약정의 휴대전화 계약과 통신사 변경, 부가서비스에 관한 설명을 듣던 우리 부자의 태도는 아침인사처럼 명료했다.
'그래서 뭐? 얼마 내면 돼?'
매장 직원의 태도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흡사 지름길을 안내하는 GPS 마냥, 법적으로 문제 되지 않는 최소한의 설명만을 주술처럼 늘어놓았을 뿐이다. 그랬더니 새 휴대전화기가 생겼다. 멋진 신세계라고 좋아해야 할까? 고작 보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내가 서명했던 수많은 약관이 무엇을 말했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상식 밖이지만 평범한 거래 하나가 성사된 것이다.
오래지 않아 나는 상해보험에도 가입하게 됐는데, 자의가 아니었다. 보험사 측은 이미 어머니와 구두로 합의가 된 상태에서, 전화로 엄청난 수의 약관을 불러주고 그 동의가 실정법적 효력이 되도록 녹취하고자 했다. 휴대전화 구입과 마찬가지의 태도였다. 나는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에 몇 차례 수순에 제동을 걸어보긴 했으나, 이미 기본값으로 설정된 '가입'이라는 사실(일종의 'anchor')까지는 밀어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힘이 나를 이토록 줏대없는 쪼다로 만들었을까?
"인간이란 피조물은 얼마나 대단한가! 이성의 고귀함이며! 능력의 무한함이여! 생김과 동작은 얼마나 반듯하고 멋진가! 행동거지는 천사가 따로 없다! 헤아림은 신의 경지다! 세상 가운데 아름다움이요, 동물 가운데 귀감이다." (<햄릿> 2막 2장 중에서)
이렇듯 과거 셰익스피어와 같은 지성들이 인간의 이성을 찬양했고, 고전 경제학은 심지어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전제에 의해 참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해진다. 하나, 내가 짐승이거나 둘, 셰익스피어가 틀렸다. 이하는 내가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몇 가지 근거가 될 것이다.
'상식 밖의 경제학'을 쓴, 댄 애리얼리의 행동경제학은 기존에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경제학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고 비합리성을 꼬집는데, 개중 한 가지는 사람들이 복잡성을 피해서 명료한 쪽으로 선택한다는 경향성이다. 글의 처음에 첨부한 댄 애리얼리의 강연에서 그는 사람들의 인지적인 착각, 또는 의사결정의 착각들에 관한 우습고 충격적인 자료들을 제시하는데, 특히 유럽 각국의 사후 장기이식 동의율에 관한 도표를 근거 삼으려 한다.


찰나에 여러분의 감각회로가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서 사진의 가치가 달라진다. 굉장히 다리가 긴 동현이 등에 김구라 씨가 체면 불고하고 업혀 있는 기괴한 사진으로 보았다면 당신은 상식 밖이지만 평범한 감각 처리를 한 셈이다. 물론 이는 착시다. 내가 태어나는 해에 돌아가신 켈리(Kelly)라는 분은, 특정한 사물이 A로 보이는 것은 이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 사물을 A로 바라보기 때문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이런 생각에 구성개념적 대안론(constructive alternativism)이란 이름을 붙여서 동양의 한 청년이 블로그에 인용하게 했는데(그래, 나 말이야). 이를 사실을 받아들이자면, 개인의 현실에 대한 지각은 해석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이며,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형태주의 불확실성과 대체로 같은 맥이다. 착시의 교본으로 돌아가서,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사진을 바로 보려고 노력한다면, 두 부자는 정상적인 몸 비례를 되찾아서 김구라 씨가 동현이를 들어 안고 있음을 지각할 수 있으리라.
오랜 진화과정을 거친 우리가 이렇듯 필연적으로 불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생산경로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그런 '최소 노력의 법칙'이 생존에 적응적이기 때문이리라.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시속 140km의 공을 치는데,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의 모든 감각에 최선의 인지 에너지를 동원하며 정확한 연산으로 스윙을 날리려 한다면 사람들 보기엔 돌부석일 따름일 것이다.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의 방망이에 맞추는 일련의 과정에는 주의거리가 무한하다. 굳이 특별히 많은 신경을 요구하는 운동경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무엇인가 지각하고 인지영역으로 처리하는 데에는 수많은 방해요소가 혼재돼있다. 바쁜 생활 가운데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약관을 정독하고 자문을 구한 뒤에야 비로소 'Yes'를 클릭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칵테일파티에서 가청 범위의 모든 대화 내용을 인지하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감각의 폭격 속에서 모든 요소에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다가는 필시 미쳐버릴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필연적인 불량을 감수하면서라도 일부에만 특별히 주의하고 나머지에 관해서는 넘겨짚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도식과 휴리스틱 개념도 바로 이런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의 관점에서 풀이된다.
다시 일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 집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음반을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 음원이 저작권자에게 깨나 짭짤한 수입원이 되고 있는 반면, 정식 음반이 안 팔리는 상황은 외환위기에 즈음한 MP3의 등장 이후로 장기간 횡보 중이다. 물론 사람들 소비가 위축된 탓도 있겠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음원을 훔치는 재미가 습관이 돼버린 면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인지적 구두쇠의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새로운 풀이를 해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실물 음반 구매는 인터넷 음원 구매보다 훨씬 귀찮다. 턴테이블 레코드에서 카세트테이프와 CD로의 전환만큼이나 인터넷 음원의 주류화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 그리고 MP3 플레이어의 크기 차이만큼이나 명확하다. 게다가 MP3 파일은 활용하기도 쉽다. MP3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음반업계나 일반여론마저 사람들의 영악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조금 저렴하다고는 해도 지금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인터넷 음원을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로써 나는 말할 수 있다. 음반매장이 망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영악'이 아닌 '단순'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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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인지적 구두쇠
→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접하고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에 비해서 우리의 사고와 추론 능력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가능한 한 다양한 심적 전략 및 지름길들을 최대로 활용하여 추론하고 판단하는 인지적으로 인색한 존재'라고 보는 관점. (한덕웅, 사회심리학, 2005, p.72)
② 도식
→ 실험심리학 용어사전
(http://www.cogpsych.org/dict/dict.cgi?cmd=view_iterm&iterm=schema)
③ 휴리스틱
→ 실험심리학 용어사전
(http://www.cogpsych.org/dict/dict.cgi?cmd=view_iterm&iterm=heuristics)
# by | 2009/12/19 12:46 | 삶과 심리학의 연합 학습 | 트랙백 | 덧글(4)




